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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정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25만 명의 추모객과 함께한 마지막 여정

by lasmong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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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지난 4월 21일 오전 7시 35분, 88세의 나이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오늘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 장례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0년 만에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로, 그 의미와 영향력은 종교를 넘어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엄숙하고 소박한 교황 장례 미사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5시(현지시간 오전 10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문이 열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이 담긴 나무관이 광장 야외 제단으로 나왔습니다.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라는 입당 성가와 함께 시작된 장례 미사는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례하고, 전 세계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이 공동 집전했습니다.

교황의 관 위에는 펼친 성경이 놓였으며, 관 속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되어 함께 안치되었습니다. 이러한 장례 의식은 「교황 장례 예식서」에 따라 엄격히 진행되었으며, 교황의 소박함을 반영하듯 장례식 역시 화려함보다는 엄숙함과 경건함이 돋보였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급' 바티칸 장례식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에는 유엔 정상회의를 방불케 하는 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를 비롯해 젤렌스키, 트럼프, 룰라, 마크롱, 밀레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교황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적 행사가 되면서 이탈리아 당국은 비상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교황 장례를 앞두고 이탈리아 전국에서 경찰이 동원되어 로마 시내 여러 도로들이 통제되었고, 바티칸 상공에는 경찰 헬기가 띄워져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교황 죽음 이후 이어진 대규모 조문 행렬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연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조문 첫날에만 10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몰렸으며, 붐빌 때는 4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가까운 사람을 잃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황의 안식을 기원해요."라는 한 로마 수녀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교황과의 이별을 슬퍼하면서도 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조문 행렬이 밤까지도 이어지자 교황청은 예정된 마감 시간인 자정을 넘겨서도 대성당의 문을 열어두는 특별 조치를 취했습니다.

교황 조문을 위한 전 세계의 애도 물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전 세계적인 애도 물결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교황을 기리기 위한 조종(弔鐘)을 울렸으며, 매일 밤 에펠탑을 점등하는 파리시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뜻에서 하루 동안 불을 켜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시아 최대 로마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여러 성당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종을 울렸으며, 영국 정부는 화요일 저녁까지 정부 청사에서 반기(半旗)를 게양하도록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교황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하는 등 전 세계가 하나 되어 교황의 선종을 슬퍼했습니다.

마지막 여정, 6km의 운구 행렬

장례 미사 이후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생전에 선택해 둔 안식처인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운구될 예정입니다. 바티칸에서 출발해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등 약 6km 거리를 지나가는 운구 행렬은 장례 미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교황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사람 걸음 속도로 천천히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는 선종한 교황이 바티칸 밖에 묻히는 드문 사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첫 외부 방문지로 선택했을 만큼 애착을 보였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됨으로써 그의 소박하고 겸손한 삶의 철학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세계 종교 지도자로서의 유산과 영향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역사상 첫 남미(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66대 교황에 선출되어 12년간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왔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성직자'라 불리며 가톨릭 교회의 포용적 측면을 강조했던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리더였습니다.

특히 그는 동성애, 여성, 환경 문제 등에 대해 과감한 메시지를 던지며 교회 내 개혁의 물꼬를 텄으며, 그의 포용적 리더십은 가톨릭 교회를 보다 열린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선종 전날까지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부활절 축하의 인사를 건넸던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교전 당사자들이 전쟁을 중단하고 인질을 석방하기를, 굶주리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호소한다"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과도 인연이 각별했습니다. 교황 즉위 후 세 번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해 2014년 8월 서울과 대전을 찾아 가까이서 신자들을 만났습니다.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교황이 경차를 타고 달리며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소박한 종교 지도자의 따뜻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교황 장례식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이는 한국과 바티칸 간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교황 장례가 남긴 시대적 의미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은 단순한 종교적 예식을 넘어 인류 공동체가 하나 되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장례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적인 슬픔이 넘쳐났던 순간으로, 전 세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한 인물의 삶과 죽음을 통해 평화와 화합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온화한 미소로 소외받는 이들을 위로해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력은 그의 선종 이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가 남긴 평화와 포용의 메시지는 전쟁과 분쟁으로 지친 현대 사회에 중요한 지침이 되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바티칸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25만 명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희망의 메시지는 이 무거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교황의 마지막 여정이 끝나는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가 평생 전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일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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